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카 제국 (문단 편집) == 경제 == 잉카 제국의 경제체제는 [[상평통보]]가 통용되기 이전의 [[조선]]을 비롯한 18세기 이전의 한반도 국가들과 상당히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금과 은의 매장량은 많았지만 금속화폐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즈텍 제국의 카카오처럼 어떤 작물을 표준적인 화폐로 지정하지 않았다. 그나마 옷감이 화폐로 통용되었지만 옷감만 통용된것은 아니었고, 물물교환이 활발했다. '아이유'라고 불리는 집단 농장 단위로 경작하면서 교육, 음식, 보건, 의료와 같은 공공 서비스들을 함께 나누어 쓰기도 했다. 잉카인들은 화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농사지은 것으로 자급자족했으며 남는 곡물이나 옷감을 시장에 가서 교환하는 식으로 경제활동을 해나갔다. 농사와 조세를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대가족 단위로 진행이 되었고, 가족들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무언가 맡을 일들이 주어졌다. 또한 산악 지방으로 이루어져 왕래가 불편한 상황속에서도 굉장히 조직화된 경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제국의 북쪽 끝 콜롬비아의 특산물이 저 먼 [[아마조니아]]의 특산물과 거래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물산의 이동도 자유로운 편이어서 처음 이 곳에 도착한 스페인 군인들이 놀랐을 정도였다. 주된 산업은 당연히 [[농업]]이었다. 험난한 [[안데스 산맥]]의 기질적 특성상 [[밀]]이나 [[쌀]] 따위는 키울 수 없었고, 주로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나 [[옥수수]] 등이 주요 작물이었다. 그 외에도 [[토마토]]나 [[고추|칠리 페퍼]], [[목화]], [[땅콩]] 등을 주로 키웠으며, [[퀴노아]]나 [[아마란스(식물)|아마란스]] 같은 부식들도 따로 재배하고는 했다. 스페인은 남미를 정복한 직후 잉카의 작물들을 구대륙으로 가져가 널리 퍼뜨렸는데, 덕분에 유라시아 세계에 남미의 대표적인 작물이었던 감자나 고추 등이 전해지면서 식문화가 굉장히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주로 [[태평양]]과 인접한 해안 지대에서 농사를 많이 지었고, 안데스 산맥의 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기도 했다. 또한 비가 많이 내리는 아마존 일대에서도 나름대로 농사를 많이 지었다. 특히 이 안데스 산맥의 계단식 밭이 굉장히 유명한데, 잉카 제국은 이 계단식 농법 덕분에 인구가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계단식 농법을 쓰면 산의 토양이 비 등에 유실되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물을 끌어올리기도 쉬웠기에 산지가 대다수인 잉카에서는 이만한 농법이 또 없었다. 잉카인들은 '쿨카스'라고 불리는 창고들을 지어 이 곳에 생산물들을 저장했는데, 주로 옥수수나 감자 따위가 주된 저장물이었으며 안데스의 서늘한 바람을 이용해서 [[동결건조]]시켜 가루 형태로 저장하기도 했다. 감자 등을 발로 짓밟은 다음,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태양빛을 맞히면서 몇 날 며칠간을 그대로 두면 이 감자가 바싹 말라 쉽게 썩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감자가 먹고 싶다면 저장해둔 마른 감자 가루들에 물을 섞기만 하면 되었다. 잉카인들은 곡물 외에도 [[라마]]나 [[알파카]] 등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동물들을 키워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했으며, 가끔씩은 야생 [[비쿠냐]]와 [[기니피그]] 등을 잡아먹기도 했다. 잉카인들은 주로 생선이나 채소를 중심으로 한 식단을 가지고 있었으며, 옥수수로는 '치차 맥주'를 만들어 먹었다. 이 치차 맥주를 만들었던 방법이 참 희한했는데, 여자들이 옥수수를 열심히 씹은 다음, 그 옥수수를 커다란 자루에 모두 뱉는다. 이 상태로 며칠 놓아두면 [[미인주|침 속의 효소와 옥수수의 영양분들이 발효되면서 치차 맥주가 만들어진다]]. 이후 이 자루 속 액체를 거름망에 거르면 완전한 치차 맥주가 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